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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헨드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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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 my left hand, man, it's closest to my heart.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그쪽이 내 심장과 가장 가까우니까.)”

지미 헨드릭스, 악수를 청하며

“중요한 것은 할 수 있는 만큼 난해해지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솔직해지는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jpg


Jimi Hendrix (James Marshall Hendrix)
1942.11.27. - 1970.9.18.

개요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 본명 제임스 마샬 헨드릭스 (James Marshall Hendrix) 는 미국의 기타리스트이자 블루스, 록 음악가입니다. 지미 헨드릭스는 기타 연주와 작곡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렉트릭 기타의 사운드적인 측면에서도 수많은 기법들을 개발했지만 만 27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전설로 남게 되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메모광이었던 그가 남겼던 메모들을 바탕으로 2013년에 출판된 『STARTING AT ZERO: HIS OWN STORY』라는 책입니다.

생애

출생과 어린 시절

제임스 먀살 "지미" 헨드릭스 (James Marshall "Jimi" Hendrix) 는 1942년 11월 27일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날 당시의 이름은 조니 앨런 헨드릭스 (Johnny Allen Hendrix) 였으나 이후에 제임스 마샬 헨드릭스로 개명하게 되었습니다.

지미의 아버지 앨 헨드릭스는 매우 엄하고 내정한 사람이었으며, 어머니 루실 헨드릭스는 옷을 잘 차려입고 즐겁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지미의 어머니는 술을 많이 마셨고 아버지와 늘 불화를 빚어서 사이가 자주 틀어졌습니다. 사이가 틀어지게 될 때면 지미는 어머니와 함께 여러 집을 전전해야 했습니다. 이럴 때 지미는 대개 이모나 할머니의 집으로 갔습니다. 지미의 할머니는 아메리카 인디언 중 체로키족의 혈통이 섞인 분이었으며 캐나다에 거주했습니다.

지미가 어릴 때인 1950년 12월에 오랜 불화 끝에 그의 부모 앨 헨드릭스와 루실 헨드릭스는 결국 이혼했으며 지미와 그의 남동생은 아버지 앨 헨드릭스 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지미가 어머니 루실 헨드릭스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1958년 1월이었으며 그 후 1개월 뒤에 어머니는 사망했습니다.

지미의 아버지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식들을 주일학교에 강제로 끌고 갔으며, 늘 어른들을 공경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지미의 아버지는 정원사가 직업이었는데 전기 기술자로 일하기도 했었습니다. 지미의 집안은 전혀 부유하지 않았고, 겨울이 되어서 정원사인 아버지가 관리할 잔디가 없게 되면 상황이 심각하게 나빠졌습니다.

학창 시절과 퇴학

지미는 시애틀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친척들의 출신지인 비리티시 컬럼비아 주 밴쿠버로 전학을 갔습니다. 그러다가 이후 시애틀로 다시 돌아와 가필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지미는 학교에서 시를 많이 썼고, 시의 내용은 대부분 꽃과 자연과 예복을 입은 사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시절의 지미는 배우 혹은 화가가 되고 싶어했으며 화성 등의 다른 행성의 풍경을 상상하며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미는 학교에 매번 지각을 해서 사람들의 놀림을 받기도 했었지만 늘 성적을 A나 B로 받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미술 시간에 여자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입니다. 지미와 그의 여자 친구는 수업 시간 내내 손을 잡고 있었고, 미술 선생님은 편견이 가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갑자기 그를 물품보관소로 오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 물품보관소에서 미술 선생님은 "백인 여자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걸어서 어쩌자는 거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지미는 "뭐예요, 질투해요?"라고 반문했고 미술 선생님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으며 지미는 가필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이때가 1960년 10월으로 지미의 나이는 17세였습니다.

어이 없이 학교에서 퇴학당한 지미는 아버지를 도와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와 그는 종일 돌과 시멘트를 나르는 일을 했는데, 일당은 전부 아버지가 가져가고 지미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미는 이후에 친구들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놀기 시작했습니다. 지미와 친구들은 경찰을 때리기도 했고 경찰과 심하게 싸워서 구치소에 갇히기도 했지만 음식을 잘 먹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찰들은 편견이 가득하고 인종 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부 경찰은 괜찮은 사람도 있었기에 심하게 때리지도 않았고 제 때에 먹을 것을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지미는 이런 일탈들도 모두 지루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음악과의 인연

지미는 4세 때에 하모니카를 처음 불면서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는 바이올린피아노에 깊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아노는 집이나 다른 곳에 들고 갈 수가 없었고 들고 다닐 만한 악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밤에 지미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가 왔었는데, 아버지의 친구가 술에 심하게 취해서는 지미에게 자신의 어쿠스틱 기타를 5달러에 팔았습니다. 이렇게 첫 기타를 얻게 된 지미는 왼손잡이여서 기타 줄의 순서를 반대로 해야 했으나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엔 줄의 위치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타 조율을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줄을 푼 뒤에 반대 방향으로 다시 끼웠으니 음정이 모두 틀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미는 악기점으로 가서 거기에 있는 기타 줄들을 하나씩 뜯어보면서 기타를 조율했습니다. 이렇게 기타를 처음으로 연주하기 시작한 때는 지미가 14세 혹은 15세일 때였습니다.

지미는 늘 집의 뒷마당에서 기타를 쳤는데 동네의 친구들이 모여서 멋지다고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엔 기타가 지겨워져서 기타를 치워버렸는데 척 베리의 음반을 듣게 된 다음에 다시 흥미가 생겨서 기타를 다시 꺼냈습니다. 지미는 기타 레슨 같은 것은 받은 적이 없었기에 음반과 라디오를 통해 접하는 음악의 리프들을 듣고 똑같이 연주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시절의 지미의 우상은 단연 척 베리머디 워터스였습니다.

지미는 17세가 되던 해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벨베톤스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활동했습니다. 당시 지미는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했었는데 다른 사람들의 악기 소리에 기타 소리가 완전히 묻혀버린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왜 그런 것인지 잘 몰랐으나 3개월 후에는 음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일렉트릭 기타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미는 댄일렉트로 사의 일렉트릭 기타인 Supro Ozark 1560S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가 힘들게 일하면서 사준 기타였습니다. 지미가 소속된 밴드의 첫 공연은 주 방위군 본부에서 있었으며, 멤버 한 사람당 35센트와 햄버거 세 개를 받았습니다.

처음 밴드 활동을 하게 된 지미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매우 어렵게 느꼈습니다. 스스로는 3곡 정도 연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무대에 설 시간이 되면 온몸이 떨리면서 긴장되는 바람에 무대의 커튼 뒤로 가서 연주를 해야만 했습니다.

절도 혐의와 입대, 제대

1961년 5월, 지미는 훔친 자동차를 탄 혐의로 체포되어서 법정에 서게 되었고, 지미를 담당한 국선 변호사는 지미가 군에 입대할 것이라고 말했고 결과적으로 집행유예 2년을 판결받았습니다. 당시 지미는 한 푼도 없었으며 훔친 차를 타고 다녔다는 이유로 일주일 동안 감옥에 있게 되었지만 본인은 훔친 차인지 몰랐었습니다. 재판 이후에 지미는 가장 처음 눈에 띈 모병 사무소에 들어가 자원 입대 신청을 했습니다. 당시 지미는 음악 교육이라고는 하나도 받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음악가로 등록할 수도 없었기에 이왕 군대에 갈 거면 끝까지 가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지미는 공수부대에 자원 입대하게 됩니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본질적으로 생활이 지루했기 때문이었는데 정작 나중에는 군대가 가장 지루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미가 들어간 공수부대의 훈련은 정말 힘들었는데, 낙하산 벨트를 맨 채로 지상에서 몇 인치 떨어진 곳에 매달려 있는 훈련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 훈련은 벨트가 조금이라도 잘못된 위치에 매여 있을 경우에 심한 통증이 오는데 벨트를 차는데 겨우 3초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지미는 켄터키에 배치되었고 15개월 정도 복무했지만 낙하산 훈련 도중 스카이훅에 발목이 걸려서 부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지미는 1962년 7월에 제대했습니다.

제대 이후, 무명 시절

지미는 제대를 해서 부대 밖으로 나간 다음에 300달러 혹은 400달러 정도 되는 돈을 함께 가지고 시애틀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미는 집에 돌아가기 전에 근처의 클라크스빌이라는 마을에 들러서 하룻밤 자고 출발하기로 결심합니다. 지미는 클라크스빌의 재즈를 연주하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고, 술집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계속 있다가 술에 잔뜩 취해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의 술값을 다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술집을 나설 때엔 16달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테네시에서 시애틀까지 가려면 2000마일이나 가야 하기 때문에 그보다 돈이 더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미는 집에 못 가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미는 기타 연주를 통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남쪽으로 내려가서 카페, 클럽, 거리에서 기타를 계속 연주했습니다. 지미는 잘 수 있는 곳이라면 아무 곳에서나 잤으며 먹을 것이 필요하면 훔치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돈을 벌기도 했지만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미는 아주 펑키한 스타일로 베이스를 연주하는 빌리 콕스 (Billy Cox) 라는 친구를 알게 되었고 그와 함께 킹 캐주얼스 (King Kasuals) 라는 그룹을 결성했습니다. 클라크스빌에서 지미의 밴드는 W&W. 맨 (W&W. Man) 이라는 회사에 고용되어 일했는데, 보수를 굉장히 적게 주어서 지미의 밴드원들은 회사 이름에서 W&W가 'Wicked and Wrong' (사악하고 못된) 의 약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후 지미는 내슈빌이라는 마을로 가서 한창 건설 중이던 주택 단지에서 살았습니다. 바닥도 아직 안 깔려 있고 지붕도 없었기에 계단 밑에서 잠을 잤습니다. 지미는 내슈빌에서 온갖 종류의 음악을 다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내슈빌이라는 마을에서는 모두가 기타를 치는 법을 알 정도로 기타 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시애틀에서의 지미는 기타를 굉장히 잘 연주하는 편이었지만 내슈빌에서는 개나 소나 다 블루스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미는 사람들이 블루스 기타를 연주하는 법을 보면서 연구했습니다.

지미는 이후 남부 지역을 계속 돌아다녔고, 결국엔 뉴욕에 가서 아폴로 극장에서 열린 아마추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여 25달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미는 여전히 궁핍한 생활을 계속 했으며 높은 건물들 사이에 있는 쓰레기통 옆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쥐가 가슴 위를 뛰어서 지나가고 바퀴벌레가 주머니에 있는 캔디 바를 훔쳐가기까지 했습니다. 지미는 그런 와중에도 계속 음악과 관련된 직장을 구하고 싶어했습니다. 음악과 무관한 일을 하면 늘 몇 주일 만에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이즐리 브라더스 (The Isley Brothers) 라는 밴드의 멤버 중 한 사람이 지미가 클럽에서 연주하는 것을 보고는 일자리를 알선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지미는 한동안 아이즐리 브라더스와 함께 활동을 했습니다. 그들은 지미의 독특한 연주 기법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지미는 그들이 공연하는 클럽에서 잠을 자야 했는데 그곳에도 쥐와 바퀴벌레가 잔뜩 있었습니다. 이후 지미는 내슈빌에서 아이즐리 브라더스의 백 밴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내내 F키에 맞춰서 반주를 하는 것이 지겨웠기 때문입니다. 지미는 다시 길목에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2주 뒤에 소울 공연 팀이 도시로 찾아오게 되었고, 지미는 백 밴드에서 연주하는 작은 일거리를 담당했습니다. 이들을 따라 순회 공연을 함께 하던 중 지미는 미주리 주 캔자스 시티에서 버스를 놓쳐서 발이 묶이게 됩니다. 다행히도 다른 소울 그룹이 나타나서 지미를 조지아 주 애틀랜타로 데려갔으며, 거기에서 지미는 리틀 리처드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미는 리틀 리처드 앞에서 오디션을 봤고, 그가 지미를 마음에 들어 해서 한동안 리틀 리처드의 밴드에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화려한 차림을 좋아하던 지미는 리틀 리처드와 자주 마찰을 빚었고, 로스 엔젤레스에 도착할 때까지 5주가 넘도록 돈을 주지 않고 나중에 주겠다는 말만 하자 결국 지미는 리틀 리처드의 밴드를 떠났습니다.

이후 지미는 여러 그룹의 백 밴드를 전전하다가 카페 오 고 고 (Cafe Au Go Go) 라는 클럽에서 존 해먼드 주니어에게 고용되어 기타 연주를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미는 당시에 이미 작곡을 하고 있었는데, 가사 부분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다가 당시의 무명 가수였던 밥 딜런을 만나게 된 후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딜런은 지미의 곡에서 가사를 쓰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지미는 1966년 초에 랜디 캘리포니아 (Randy California) 와 함께 지미 제임스 & 블루 프레임스 (Jimmy James & The Blue Flames) 를 결성합니다. 밴드 결성 직후에 바로 에픽과 CBS 레코드사에서 제의가 들어왔으나 지미는 아직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미의 밴드가 계속 카페 오 고 고에서 연주를 하고 있을 때 많은 음반사들이 그들에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어떤 영국인이 그룹 애니멀스 (The Animals) 의 베이스 연주자인 채스 챈들러 (Chas Chandler) 에게 그들의 음악을 한 번 들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당시의 애니멀스는 센트럴 파크에서 마지막 공연을 하던 중이었는데, 채스는 지미의 연주를 보러 클럽에 찾아온 뒤에 충격적인 연주에 감명을 받아서 영국으로 건너가서 그룹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했습니다. 지미는 영국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까짓 거 가죠, 뭐." 라고 답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1966년 9월 23일, 지미는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취업 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지미를 몇 시간 동안 잡아두었으나 다행히도 잘 해결되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한 지미는 채스 챈들러의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그곳은 예전에 링고 스타가 살던 곳이었고 바뀐 것이라고는 드럼을 치운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집 곳곳에는 스테레오 전축이 설치되어 있었고 거울이 엄청나게 많이 붙어 있는 화장실도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처음 기타를 연주했을 때 지미는 에릭 클랩튼이 있던 그룹인 크림 (Cream) 과 함께 있었습니다. 당시에 그들은 지미의 연주에 압도당했습니다. 지미는 체류 허가증이 없었기 때문에 일을 많이 할 수 없었고, 영국에 머물 생각이라면 장기 체류 허가를 받을 수 있을 만큼 일거리를 잡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지미는 수많은 공연에 참여하게 되며 많은 음악인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지미의 매니저가 된 채스 챈들러는 아는 전화번호가 많았는데, 베이시스트와 드러머를 물색하여 결국 베이시스트 노엘 레딩과 드러머 미치 미첼을 영입해서 밴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 (The Jimi Hendrix Experience) 를 결성하였습니다. 노엘 레딩은 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원래는 러빙 카인드 (The Loving Kind) 라는 그룹에서 리드 기타를 담당하던 기타리스트였는데 채스가 그에게 베이스 연주를 권했고 결국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베이시스트가 되었습니다. 미치 미첼은 펑키한 스타일의 리듬 앤 블루스 드러머였으며, 재즈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결성한 지 4일 만인 1966년 10월 13일에 프랑스 파리의 올랭피아 극장에서 조니 알리데와 함께 공연을 했으며, 이후로 10월 18일까지 투어 공연은 계속되었습니다. 이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1966년 12월 16일에 첫 싱글 앨범인 「Hey Joe」를 발표했습니다. 이 음반은 이후 1967년 2월에 영국 차트 4위에 올랐습니다.

1967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첫 앨범인 <Are You Experienced> 가 발매되었습니다. 이 앨범은 영국에서 발매된 버전과 미국에서 발매된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영국판은 첫 곡이 「Foxy Lady」였고 미국판은 첫 곡이 「Purple Haze」 였습니다. 이 앨범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며 특히 영국에서는 1967년 한 해 동안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미 헨드릭스 얘기만 할 정도였습니다.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인해 에릭 클랩튼의 크림 같은 다른 영국의 밴드들은 충격을 받았으며 그에게 압도되어 고전해야만 했습니다.

밴드 오브 집시스

1969년에 지미 헨드릭스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를 해체하고 친한 친구였던 베이시스트 빌리 콕스와 드러머 버디 마일스와 함께 3인조 밴드인 밴드 오브 집시스 (Band of Gypsys) 를 결성합니다. 엄청난 실력을 갖춘 세 명은 밴드 이름과 같은 라이브 앨범을 1970년에 남기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었으나 1970년 9월 18일에 지미가 치사량의 약물 복용을 한 채로 사망하면서 이들은 새로운 음악을 보여주지 못하게 됩니다.

음악적인 측면

음악적인 측면에서 지미 헨드릭스는 최초로 '사운드 메이킹'의 개념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혁명아로 불립니다. 그는 기타 앰프의 볼륨을 최고로 올려서 거친 소리 (일명 디스토션) 를 얻어내었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또한 앰프의 스피커를 칼로 찢어내서 특이한 떨림을 주는 퍼즈 사운드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가 개발한 이러한 소리들은 얼마 후에 이펙터로 출시되었고 현재는 적은 양의 볼륨에서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미 헨드릭스는 기존까지 좋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 피해야 하는 화음으로 여기던 불협화음을 자신의 곡에 의도적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각각의 음들이 서로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 드는 동시에 곡들 듣는 사람들이 앞으로 곡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예상할 수 없도록 만들어서 독창적인 지미 헨드릭스 사운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화성학의 측면에서도 지미 헨드릭스의 곡들은 굉장히 파격적이며 상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지미 헨드릭스를 탁월하게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은 피드백 주법과 와우 페달을 사용한 기법이었습니다. 마이크를 앰프에 가까이 두게 되면 기계에서 나오는 전기적인 신호들이 충돌하게 되어 끽끽거리는 하울링 소리가 발생하게 되는데, 하울링을 잘 관찰해보면 끽 하는 소리가 나기 이전에 소음이 약간 줄고 그 파장만이 유지되는 어떤 위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미 헨드릭스는 바로 이 위치를 알아내어 피드백 주법이라는 것을 발명했습니다.

피드백 주법은 일렉트릭 기타에 붙어 있는 마이크인 픽업의 위치를 앰프 쪽에 적절히 가져다 대는 원리인데, 픽업에서 울리는 소리를 앰프가 잡아내고 앰프 사운드를 다시 픽업이 감지하고 하는 식으로 계속 신호가 끊이지 않고 이동하면서 소리가 매우 길게 납니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지미 헨드릭스는 다른 곡을 계속 연주하다가 갑자기 미국 국가를 연주했습니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국가 연주에 당황했으나 그저 평범한 느낌으로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지미 헨드릭스는 일렉트릭 기타 하나만으로 굉음과 폭격 소리 등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당대에 베트남 전쟁을 하고 있던 미국 정부에 대한 조롱의 의미이자 강한 반전의 메시지였습니다.

헨드릭스의 기타 사운드는 청중들만을 놀라게 한 것이 아니라 당대의 유명한 기타리스트들까지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의 백인 블루스 연주자였던 마이크 블룸필드 (Mike Bloomfield) 는 그 충격을 아래와 같이 회고했습니다.

“나는 폴 버터필드와 연주하고 있었고 그 구역에서는 내가 최고였습니다. 아니, 최고라고 생각했었던 거죠. 하지만 내 눈앞에서 그(헨드릭스)는 나를 완전히 화형시켜버렸어요. 난 기타를 꺼낼 엄두조차 못 냈습니다. 수소 폭탄이 터지고 유도탄이 날아가는 그의 기타 사운드를 도저히 형언할 수 없습니다. 그는 내가 듣기 원하던 모든 사운드를 그 방에서 한 대의 스트라토캐스터와 트윈 앰프, 마에스트로 퍼즈 톤을 가지고 만들어내고 있었던 거예요.”

마이크 블룸필드의 회고

특징

지미 헨드릭스는 기타를 뒤집고 줄 순서도 거꾸로 끼워서 왼손으로 피킹하며 연주하였는데, 사실 헨드릭스가 오른손잡이였는데 일부러 그렇게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 설에 따르면 그가 존경하던 블루스 기타리스트 알버트 킹을 따라하기 위해 기타를 뒤집어서 연주했다는 것입니다. 알버트 킹은 오른손잡이용 기타를 그냥 왼쪽으로 들고 연주하는데 지미 헨드릭스는 그 사실을 잘 몰랐는지 줄 순서까지 왼손에 맞게 바꾸고 연주했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물론 헨드릭스를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은 그가 왼손을 주로 쓰는 왼손잡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이 설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습니다.

지미 헨드릭스가 가장 많이 연주했던 기타는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입니다. 스트라토캐스터는 지미 헨드릭스 덕분에 아주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게 되기도 했으며 지금도 가장 유명한 기타 모델 중 하나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헨드릭스는 데뷔 직후의 초기 활동에서는 1960년대의 스트라토캐스터를 많이 사용했고, 이후로는 1968년산의 라지 헤드 스트라토캐스터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물론 깁슨플라잉 V레스 폴, SG 등을 연주하는 사진이나 공연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스트라토캐스터만을 쓴 것은 아닙니다.

앨범

The Jimi Hendrix Experienced

Band of Gypsys

The Jimi Hendrix

작품

  • 「Foxey Lady」 (여우같은 여자)
  • Purple Haze」 (보라색 안개)
  • 「Spanish Castle Magic」 (스페인 성의 마법)
  • 「Little Wing」 (작은 날개)
  • 「Burning of the Midnight Lamp」 (불타는 한밤의 램프)
  • 「Voodoo Chile」 (부두 차일)
  • 「Voodoo Child (slight return)」 (부두 차일드)
  • 「Hear My Train A Comin'」 (히어 마이 트레인 어 커밍)

지미 헨드릭스가 사용했던 장비들

기타

이펙터

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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