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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지동물과 저열한 인간」 (節肢動物과 低劣한 人間) 은 2015년 3월 19일에 발표된 Lihe의 산문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이후에 여러 부분들을 수정해서 다시 공개한 것입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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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사에 합리적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나는 가장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세계관을 추구하는 과정과 함께 거의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자란 사람이었으며, 그러한 의문들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했던 수많은 생각들이 다행히도 모두 헛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일단 모종의 불완전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모종의 결론이 하나의 철학적 관념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상당히 초라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자부할 만한 것이라는 마음이 있다.)

내가 도달하게 된 불완전한 결론을 요약하자면 ‘내가 아닌 모든 존재들의 유기적 구조를 통해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며, 나와 내가 아닌 존재들의 상호 작용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의 모든 활동과 나의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닌 존재들은 근본적으로 내가 아닌 것들이기 때문에 나의 입장에서 하는 판단과 분석에 있어 그러한 대상은 전적으로 나와 동등한 위치를 가져야만 한다. 내가 아닌 존재들에 대한 나의 판단은 내가 아닌 존재들을 규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늘 심사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슬프게도 그러한 판단은 절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그러한 판단의 연속이 바로 인생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장 이상적이고 좋은 판단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좋은 판단을 추구하면서 사는 것이 합리적인 (혹은 최대한 합리적이려고 하는) 사람일 것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과 상당히 유사하다. 나의 이러한 시각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점에 비해 사르트르의 사상에 대해 깊이 연구했던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기에 그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았음에도 나의 생각의 귀결로 그와 거의 같은 지점에 도달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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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보면서 그 일들만큼이나 다양한 생각들을 하다보면, 무언가가 우리의 합리적 판단과 그 결과로 나오는 행동에 영향을 미쳐서 우리들을 모두 모순에 빠지게 만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합리성과 논리성을 추구하며 나름대로 훌륭한 지성을 갖춘 생명체라고 여기지만 실제로 우리의 모습들을 보게 될 때면 과연 지성을 갖춘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며 심지어 우리가 과연 합리성과 논리성을 추구라도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된다.

지구 상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지성체인 인간은 사람 사이의 박애를 논하면서도 자신만의 특별한 애착의 대상을 가지고 싶어한다. 인간들 중 일부는 다른 생명체에 대해 그것들이 오직 ‘생명’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높은 지적 수준의 주장을 하면서도 자신의 집에 기어다니는 가련한 절지동물을 잔악하게 살해하곤 한다. 게다가 그렇게 살해되는 절지동물들 앞에서는 ‘익충’과 ‘해충’이라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그 주관은 오직 절지동물을 죽이는 인간의 주관일 뿐이다.) 해괴한 논리가 그러한 판단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한 시도가 된다. 인간의 역사에서 그동안 수없이 자행된 학살들을 보면 ‘비인간화’라고 하는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죽이려고 하는 대상들을 죽이는 주체인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고 한다면 죽이는 행위의 정당성을 쉽게 입증할 수 없으며 인간적인 감정들을 느끼기 때문에 학살의 이전에 ‘인간이 아닌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비인간화 기법의 전형적인 활용이다.

이런 비인간화와 유사하게, 그렇게 절지동물을 살해하는 사람들은 우선 자신들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생명’이라는 분류를 만들고 그것을 판단의 전제로 삼는다. 그 다음에 자신의 기호에 맞지 않는 절지동물들을 그 ‘생명’이라는 분류에 포함시키지 않음으로써 그것들을 ‘비생명화’시키는 것이다. 비생명화를 당하는 절지동물들은 ‘생명체’나 ‘동물’, ‘곤충’ 같은 이름이 아니라 ‘벌레’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면서 개별적인 특성을 잃게 된다. 그저 하찮은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습지 않은가. 게다가 인간들은 자신의 기호를 옹호하기 위하여 ‘본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징그럽고 무서운 것이 본능이라면서 그것 때문에 절지동물들을 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인간의 삶을 보면 대다수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본능에 대한 억압’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공공 도덕’이라고 하는 것인데, 공동에 의한 공동적인 억압을 행하는 것이자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도덕이 존재하는 사회 내에서는 어떤 인간도 그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의 도덕을 만들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탄생하기에는 시기와 변화의 수준이 저열한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절지동물의 살해에 있어 본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실 은연중에 본능을 취사선택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본능에 충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본능들이 도덕에 의해 억압을 당하며 살고 있고 대다수가 거기에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함에도, 절지동물을 죽이는 것의 근거로 삼는 본능들에 대해서는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라고 단정짓는다는 말이다. 결국 철저하게 본능적으로 살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지동물 살해에 대한 그러한 변명은 자기기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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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생명체이기 때문에 내가 지적한 절지동물에 대한 혐오의 문제에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 가령, 거리에 있는 Nephila clavata (무당거미) 를 보게 된다면 나는 공포에 질리면서 그 생명체에 대한 존중을 할 줄 모른다. 그런 내 모습을 스스로 깨닫게 될 때면,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려고 하는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합리나 박애에 있어 한참 비껴선 것만 같아 슬퍼진다.

저 거리의 전깃줄과 가로수 사이, 그곳에 줄을 치고 한가롭게 지내고 있는 Nephila clavata가 자신을 보고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보면서 제42 이동통신으로 “만물의 영장이자 놀라운 지적 수준을 지니고 있다더니……이런 저열한 인간”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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