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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보편성에 관해 큰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들은 명석하고 대담한 이념과 그에 따르는 엄격한 추론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훌륭하고 천재적이며 이상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귀납적 개괄에 앞서는 복잡한 사실들을 취급하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안일한 사상가이자 대담한 이상가들이었다.”

앨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1925) 中

자연철학 (自然哲學, Natural philosophy) 은 자연과학 / 물리학의 전신으로, 사변적인 고찰을 바탕으로 자연에 대한 종합적인 설명을 도모하는 학문입니다. 과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 자연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자연철학은 과학사적 맥락에서 논의되는 것 이외에는 연구되지 않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역사

밀레토스 학파

BC 7세기 경부터 그리스인들은 자연 현상이 어떤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주의 근원과 운행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도모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한 해답이 처음으로 제시되었던 곳은 이오니아 지방에 있는 소아시아 연안의 밀레토스였습니다. 이 도시에서는 흔히 밀레토스 학파라고 불리는 세 명의 자연철학자가 활동하였습니다.

밀레토스 학파의 탈레스 (Θαλής) 는 바빌로니아와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동방의 지식들을 흡수하여 학문의 기초로 삼았고, 만물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대지는 원판 모양으로 생겼고 그 위와 아래에 물이 있으며, 비는 대지 위에 있는 물이 떨어지는 현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이 흩어지면 안개와 구름이 되며, 물이 뭉치면 얼음과 바위가 된다고 하였고, 물을 생명의 근원으로 인식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물이 원초적인 혼돈 상태라는 신화를 지닌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이집트 문명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일식을 예언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전에 이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일식을 예언한 기록이 존재합니다. 탈레스가 예언한 일식은 BC 585년 5월 28일에 있었는데, 이는 역사상 처음으로 정확한 날짜가 기록된 일식이었습니다.

탈레스는 자연에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방법은 아직 불완전한 상태였으나 여기에서 새로운 분야들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유의 과정에 있어 실험, 정량적인 계산, 관찰 등이 경시되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말하는 자연과학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무엇보다도 초자연적인 것을 통해 자연을 설명하는 방법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보면 자연과학의 근원적 발상을 갖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 (Ἀναξίμανδρος) 는 우주의 원질에 관해 훨씬 진보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신의 힘으로 우주가 생성된 것이 아니라 물질 그 자체의 운동에 의한 것이며, 태초의 원질은 가시적인 형태가 아니라 지각할 수 없는 추상적인 물질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이 물질은 불생불멸의 것이며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소용돌이에 의해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생겨서 그 둘은 각각 소용돌이의 주변과 중심으로 모여 지구를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천둥은 바람 때문에 생기며, 번개는 구름이 둘로 갈라지면서 생긴다고 설명하였고, 여러 가지 원소의 상호 전환과 생성은 침해와 보복의 과정이며, 그것이 바로 변화의 원리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중에서 변화의 원리는 복수가 횡행하는 인간사회를 통해 유추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아낙시메네스 (Αναξιμένης) 는 우주 만물의 원질이 공기라고 주장하였는데, 공기가 희박해지거나 농축되는 것을 통해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하였습니다. 자연을 구성하는 여러 원소 사이의 차이는 원질의 양과 농축도에 따라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공기가 농축되어 물이 되고, 물이 농축되어 얼음을 형성하며, 공기는 물이 증발할 때에 희박해지면서 생기고, 공기가 희박해지면 불이 됩니다. 즉, 물질의 변화는 가역적인 과정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설명을 시도한 것입니다.

원자론

고대 그리스에서는 자연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위해 원자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설명인 원자론에 따르면 원자는 불연속적인 입자로,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물질들의 기본 단위이자 원질입니다. 원자론은 주로 데모크리토스 (Δημόκριτος) 와 레우키포스 (Λεύκιππος) 에 의해 제기되었는데, 특히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물질 뿐만 아니라 신이나 악마와 같은 초월적 존재들도 원자로 구성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원자들은 기하학적인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크기와 모양, 무게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낙하 운동 시에 속도가 다른 원자들끼리 충돌하여 소용돌이 운동을 일으킨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이는 원자가 운동하기 위한 장소에 대한 고려로 탄생한 개념입니다. 그 외에도 무한한 수의 원자들은 무한한 진공 속에서 아무런 목적 없이 운동하며, 이러한 운동은 영원한 것이기에 여러 사물들의 성질은 원자 운동 형태에서의 차이 때문에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따르면 모든 변화는 원자들이 새롭게 배열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데모크리토스와 레우키포스의 원자론은 모든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가 오직 한 종류라고 생각했던 것에 반해, 원자가 여러 종류라고 생각하는 다원론이 탄생했습니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았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Ἐμπεδοκλῆς) 는 모든 물질이 불, 물, 공기, 흙이라는 4가지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는 4원소설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는 이 4가지의 원소를 분리하거나 결합시키는 것을 '사랑'과 '미움'이라고 설명하였는데, 서로 사랑하는 원소들은 결합하지만 미워하는 원소들은 분리된다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4가지 원소가 완전하게 결합하면 구형을 이루기 때문에 구분할 수 없으나, 점차 미워하는 힘이 강해지면 네 가지로 완전히 나누어지고, 사랑하는 힘이 강해지면 본래의 완전한 상태로 돌아갑니다. 우주에서는 이처럼 4가지 원소의 분리와 결합이 반복되며, 이는 4가지 원소 자체의 동력인에서 유래합니다. 또한, 우주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물질들은 4가지 원소의 결합 비율의 차이 때문에 그렇게 다양한 성질들을 가집니다. 예컨대 의 경우에는 불, 물, 흙이 각각 4 : 2 : 2의 비율로 결합하여 생겼다는 것입니다. 물론 엠페도클레스의 이러한 주장은 합리적인 실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변적인 생각과 직관을 통해 일반적인 원리를 유도한 것입니다. 이 주장은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추가되면서 많은 지지를 받았고, 연금술의 탄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고대의 원자론은 본질적으로 정량적이고 실험 위주의 연구나 수학적 추론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변적인 논의에 따른 추론이었기 때문에 현대적 의미의 과학 이론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후 원자론은 19세기에 화학자 존 돌튼에 의해 확인되면서 근대적인 과학 이론으로서 다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근대의 원자론에 비하면 사변적이고 다소 몽상적이기까지 한 고대의 원자론은 목적론이나 신에 의존한 설명을 배제하고, 운동이 우연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계적 세계관을 처음으로 내세웠다는 점에 있어 큰 의의를 가집니다.

히포크라테스 의학

초기 그리스 의학은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경향이 있었으나 자연철학의 발생과 더불어 의학 분야에서도 합리적인 사고를 중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히포크라테스 (Ἱπποκράτης) 에 의해 의학 분야의 혁신이 있었는데, 그는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각지를 돌아다니며 의술 활동을 하면서 질병 치료에 대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후 코스 섬에 최초의 의학교를 설립하였고, 이곳을 중심으로 코스 학파가 형성되었습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저술인 『Corpus Hippocraticum』 (히포크라테스 전집) 은 그리스 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으로 여겨지는데, 총 87권으로 의학의 여러 영역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방대한 내용을 히포크라테스가 전부 썼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간혹 서로 모순되는 설명도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에 의해 집필된 것이 확실합니다.

어쨌거나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밀레토스 학파의 자연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의학을 이론적인 과학이 아닌 기술 정도로 취급했습니다. 또한 미신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가지 사변적인 생각이나 가설 등을 거부한 것도 특징입니다.

플라톤

밀레토스 학파를 시초로 해서 많은 발전을 거듭한 그리스의 자연철학은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기존의 여러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경험에 입각한 자신의 독자적이고 일관적인 이론을 구축하였습니다.

우선 플라톤 (Πλάτων) 을 먼저 살펴보자면, 그의 사상은 종교적 전통에 가까운 자연관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초자연적 존재가 우선 존재하여 그것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여 현재와 같이 되었다는 믿음이 그것입니다. 또, 그는 세상을 보이는 세계와 본질적인 세계로 구분하였습니다. 본질적인 세계에 있는 것들은 영원히 존재하며 변하지 않으며, 보이는 세계는 본질적인 세계의 그림자와도 같다는 것이 그의 사상입니다.

플라톤은 엠페도클레스와 유사하게, 모든 물질들은 물, 불, 흙, 공기의 4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특히 기하학을 중시했던 그는 이 원소들이 정다면체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1] 그의 이러한 자연철학 이론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4원소를 입체도형으로 생각했다는 점과 원소들이 변환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다면체들은 궁극적으로 삼각형으로 분해될 수 있으며, 이러한 방식을 통해 새로운 형태로 변환될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우주론적인 측면에서 플라톤은 우주가 완전한 구의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자체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축에 지구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의 주위를 도는 각각의 천구들의 반지름에 수학적인 조화가 있으며, 이러한 발상은 르네상스 시대의 요하네스 케플러 등의 자연철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밑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학문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 (Ἀριστοτέλης) 는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명의를 배출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역시 마케도니아 국왕 아민토스 2세의 시의로 일했습니다. 그가 아직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망하였고, 그는 친척 집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이후 17세에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 위해 아테네로 와서 플라톤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플라톤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플라톤은 그에 대해 "다른 제자들에게는 박차가 필요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제동을 위한 고삐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의 사망 이후 그는 플라톤의 아카데미를 떠나 당시 14세였던 마케도니아 왕자의 가정교사가 되었습니다. 이 왕자는 나중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으며,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를 위해 많은 후원을 해주었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성장하자 그는 아테네로 돌아와서 뤼케이온 (Lykeion) 이라는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제자들을 데리고 학교 내의 정원을 거닐며 대화 식으로 강의를 하였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소요학파 (逍遙學派)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뤼케이온은 도서관, 박물관, 동물원 등의 부속 시설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들 설비에 대한 자금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원으로 조달했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하자 뤼케이온은 위태로워졌으며, 그는 아테네의 고등법원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았다가 탈출하여 망명 생활을 하던 중에 장티푸스로 사망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학문을 연구하였으며 자신의 논리에 입각하여 상당한 수준의 지식 체계를 세웠습니다. 그의 학문은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으며 동일한 기초 위에서 상호적인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학문은 세계의 영속성, 육체와 함께 영혼이 사멸한다는 주장 등과 같이 기독교의 교리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2000년 가량 서양의 학문 체계를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2]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은 크게 물리과학과 생물학으로 나뉩니다. 여기에서 물리과학은 물질 이론, 운동 이론, 우주론으로 세분화되며 긴밀한 연관성을 가집니다.

물질 이론

아리스토텔레스 4원소설 모형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설 모형.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 이론에서는 엠페도클레스가 제안했던 4원소설을 수용하여 세계가 흙, 물, 공기, 불의 4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합니다.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은 이 원소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설명에서 끝났으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 원소들에 4가지 성질을 도입하였고, 기본 원소들은 그 중에서 2가지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주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1. 흙 - 차가움, 건조함
  2. 물 - 차가움, 습함
  3. 불 - 뜨거움, 건조함
  4. 공기 - 뜨거움, 습함

그는 이를 바탕으로 이 세계에 다양한 물질이 존재하는 이유를 4원소가 포함된 비율의 차이로 설명하였습니다. 예컨대 금속은 녹아서 물처럼 변할 수 있고, 고온에서는 타기도 하기에 4원소를 모두 가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 단단한 성질을 가진 흙이 가장 많이 포함되어 있기에 금속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중세의 연금술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연금술은 4원소의 비율을 다르게 해서 납이나 철 등의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서 기인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4원소설을 바탕으로 중력을 설명했습니다. 4가지의 원소는 각각 고유한 위치[3]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면 자연히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가진다는 설명이 그것입니다. 그로 인해 흙으로 된 지구 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운동이 상승 운동과 낙하 운동밖에 없다는 점이 설명됩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제5원소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비판과 조롱을 받게 되었으나 그의 입장에서는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늘의 모든 별들이 같은 속도로 원을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으니, 우리가 관찰하기에는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하면서 운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4원소설을 통해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면 하늘에서도 상승 운동과 낙하 운동만이 자연스러운 운동이 되어 원 운동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운동이 되어버립니다. 그렇기에 그는 어쩔 수 없이 하늘에 제5원소인 아이테르(αἰθήρ) 를 도입한 것입니다.

운동 이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구에서의 운동을 자연 운동과 강제 운동으로 구분했습니다. 모든 변화에는 원인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이 두 가지 운동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이론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자연 운동의 경우에는 4원소설에 입각하여 우주 내에서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려는 물체의 고유 성질 때문이라고 설명하였으며, 강제 운동의 경우에는 항상 외부에서 을 공급받아야만 이루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이론은 중세 시대에 부분적으로 수정되기도 하였으나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튼 등이 정립한 새로운 역학 이론이 나오기 이전까지 자연철학자들의 신뢰를 받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낙하 운동에 대해 낙하하는 물체의 무게가 클수록 빨리 떨어지고, 매질의 밀도가 작을수록 빨리 떨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예컨대 큰 바위는 작은 돌멩이보다 빨리 떨어지며, 같은 물체라도 물 속에서보다 공기 중에서 더 빨리 떨어지는 점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방식으로 설명했던 이유는 투사체 운동에 있어 물체가 공중에서 움직일 때 그것을 움직이는 동인이 없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투사체 운동의 동인을 공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직 상방으로의 운동에 대해, 물체가 외부의 동인이 없어진 뒤에도 계속 올라갈 수 있는 이유 역시 공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했습니다. 예컨대 돌멩이를 위로 던지면 돌멩이 주위의 공기에도 힘이 가해져서 손에서 멀어진 때에도 공기가 돌멩이의 동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공기의 미는 힘으로 일정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존의 자연철학자들이 내놓은 견해들을 비판하고 종합하여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놓인 형태의 체계를 제안했습니다. 이 체계는 일상적인 경험에 어느 정도 들어맞고, 성경에도 부합하기 때문에 17세기의 천문학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일반적으로 인정받는 이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에 입각하여 지구 중심의 우주 체계를 생각했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4원소설 등의 사변적인 논의에 입각하여 지구가 반드시 중심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우주의 중심인 지구가 있고 그것을 9개의 구가 둘러싸고 있는 모양입니다. 가장 안쪽에 달의 천구가 있고, 그 위쪽에 수성과 금성, 태양의 천구가 있으며, 더 높은 곳에는 화성, 목성, 토성의 천구가 있고, 마지막으로 항성 천구가 있고 제일 외곽에는 제10천이라고 하는 프리뭄 모빌레가 있습니다. 프리뭄 모빌레는 모든 천구들이 회전하는 것에 동인으로 작용하는 천구입니다.

그 외

과학철학과 자연철학을 혼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과학철학은 자연과학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며 자연철학은 자연과학의 전신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도보기

Sn

  1. 물은 정20면체, 불은 정4면체, 흙은 정6면체, 공기는 정8면체에 대응됩니다.
  2. 근대 과학혁명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아이작 뉴튼이 대학을 다닐 때인 17세기 중엽에도 유럽 각지의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주된 교과목으로 선택하고 있었을 정도입니다.
  3. 불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공기가 그 아래에 있고 그 아래에 물이 있으며 제일 아래에는 흙이 있다는 것이 그가 생각한 고유한 위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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