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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목 (原州牧)

동쪽은 평창군(平昌郡) 경계까지 1백 12리, 충청도 제천현(堤川縣) 경계까지 52리. 남쪽은 충청도 충주(忠州) 경계까지 43리, 서쪽은 경기도 지평현(砥平縣) 경계까지 74리, 서남쪽은 경기도 여주(驪州) 경계까지 63리, 북쪽은 횡성현(橫城縣) 경계까지 30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2백 82리이다.

【건치 연혁】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平原郡)이다. 신라문무왕(文武王)은 북원소경(北原小京)을 두었고 고려 태조 23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으며, 현종(懸淙) 9년에는 지주사(知州事)로 하였고, 고종(高宗) 46년에는 이 주(州)의 사람이 왕명을 반역하였으므로 낮추어 일신현(一新縣)으로 하였다가 원종(元宗) 원년에 다시 지주사로 하였으며, 10년에는 임유무(林惟茂)의 외가(外家) 고을이라 하여 승격시켜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하였다. 충렬왕(忠烈王) 17년에는 글안(契丹)의 군사를 방어하는 데 공(功)이 있었으므로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고쳤고 34년에는 승격시켜 원주목(原州牧)으로 하였다. 충선왕(忠宣王) 2년에는 낮추어 성안부(成安府)로 하고, 공민왕(恭愍王) 2년에는 주(州)의 치악산(雉岳山)에 태(胎)를 안치하고 다시 원주목으로 하였다. 본조(本朝)에서는 그대로 두었으며 세조조(世祖朝)에 진(鎭)을 두었다.

【속현】

주천현(酒泉縣) : 일명 학성(鶴城)이라 한다. 주(州)의 동쪽 90리에 있다. 본래 고구려의 주연현(酒淵縣)이다. 신라 때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내성군(奈城)의 영현(領縣)으로 하였다가 현종(懸淙) 9년에 본주(本州)의 속현(屬縣)이 되었으며, 본조(本朝)에서는 그대로 하였다.

【진관】

도호부 1 : 춘천(春川) 군 3 : 정선(旌善)·영월(寧越)·평창(平昌) 현 3 : 인제(麟蹄)·횡성(橫城)·홍천(洪川)

【관원】

목사(牧使)·판관(判官)·교수(敎授) : 각 1명씩.

【군명】

평원(平原)·북원경(北原京)·일신(一新)·정원(靖原)·익흥(益興)·성안(成安)·평량경(平凉京)

【성씨】

본주 원(元)·이(李)·안(安)·신(申)·김(金)·석(石).변(邊) : 본관을 심양(瀋陽)으로 하사하였다. 최(崔) : 내(來). 조(趙) : 횡성(橫城). 주천(酒泉) 조(趙)·윤(尹)·노(盧)·왕(王)·동(童) : 모두 내(來). 강(康) : 진주(晋州). 도곡(刀谷) 채(蔡)·윤(尹) 소탄(所呑) 지(池).

【풍속】

축적(蓄積)하는 일을 숭상한다. : 지지(地誌)에 있다.

【형승】

동쪽에는 치악(雉岳)이 서리고, 서쪽에는 섬강(蟾江)이 달린다. 천년고국(千年古國)이다. : 윤자운(尹子雲)의 시에, "천년 옛나라에는 교목(喬木)이 남아있고, 십 리 긴 강은 고을의 성(城)을 둘렀다." 하였다.

【산천】

치악산(雉岳山) : 주의 동쪽 25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〇 고려 때에 진보궐(陳補闕)이라는 사람이 치악산의 서쪽을 지나가는데 소나무와 전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고 수석(水石)이 그윽하고 기이하였다. 마음으로 기뻐하여 동중(洞中)으로 들어가니 초가가 서너집 수풀 사이로 어렴풋이 있는데 한 늙은 중이 어린아이를 데리고 시냇가 돌에 앉아 있었다. 진보궐이 말에서 내려 함께 이야기하였는데 <중은> 기상과 운치가 범상(凡常)하지 아니하였다. 보니 한 지선(紙扇)을 가졌는데 다북한 소나무가 그려 있었다. 진(陳)이 부채를 가져다가 그 뒤에 글을 쓰기를, "노승(老僧)이 날마다 푸른 수염의 늙은 이를 벗하는데, 어찌 다시 참모습을 옮기어 둥근 부채 속에 넣었는가." 하니, 중이 즉시 회답하기를, "봄바람이 아미령(蛾眉嶺)에 이르지 아니하건만, 땅 가득히 교룡(蛟龍)처럼 서리어 푸르른 덩이를 지었다네."하였다.
거슬갑산(琚瑟岬山) : 주천현(酒泉縣) 북쪽 30리에 있다.
백운산(白雲山) : 주의 남쪽 30리에 있다.
식악산(食岳山) : 주의 서쪽 15리에 있다.
백덕산(白德山) : 주의 동쪽 30리에 있다.
구릉산(仇陵山) : 주천현의 남쪽 10리에 있다.
서곡산(瑞谷山) : 주의 남쪽 20리에 있다.
현계산(玄溪山) : 주의 남쪽 60리에 있다.
명봉산(鳴鳳山) : 주의 남쪽 30리에 있다.
도야니현(都也尼縣) : 주의 남쪽 30리에 있다.
유현(杻縣) : 주의 동쪽 60리에 있는데 썩 높고 험하다.
월뢰탄(月瀨灘) : 주의 서쪽 25리에 있다. 근원이 횡성현(橫城縣) 봉복산(奉福山)에서 나와서 섬강(蟾江)으로 흘러 들어간다.
섬강(蟾江) : 주의 서남쪽 50리에 있다. 즉 충청도 충주(忠州) 금천(金遷) 하류이다.
사천(沙川) : 주천현의 동쪽 22리에 있다. 근원이 강릉부(江陵府)의 월정산(月正山) 서쪽에서 나온다.
공룡탄(公龍灘) : 주천현 남쪽 20리에 있는데 사천 하류이다. 배건너는 나루터가 있다.
동천(東川) : 주의 동쪽 1백 50보에 있다. 근원이 치악산(雉岳山)에서 나와 북쪽으로 흘러서 횡성현의 서천(西川)에 합류한다.

【토산】

옥석(玉石) : 주의 서쪽 탑전곡(塔前谷)에서 난다. 영양(羚羊)·잣[海松子]·오미자(五味子)·자초(紫草)·석이버섯[石覃]·인삼(人蔘)·꿀[蜂蜜]·누치[訥魚]·여항어[餘項魚]·쏘가리[錦鱗魚].

【신증】【궁실】

객관(客館) : 서거정(徐居正)의 중신기(重新記)에, "원주(原州)는 본래 고구려의 평원군(平原郡)이다. 신라에서 북원소경(北原小京)을 두었으며 고려초에 주(州)를 두었다가 뒤에 낮추어 지주(知州)로 하였고, 또 낮추어 일신현(一新縣)으로 하였다. 중간에 승격시켜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하였다가 고쳐서 익흥(益興)으로 하였고, 공민왕조(恭愍王朝)에 다시 목(牧)으로 하였다. 예전에는 양광도(楊廣道)에 속하였으나 지금은 강원도의 계수관(界首官)[1]이다. 땅은 넓고 백성은 많으며, 산천의 아름다움과 토지의 비옥함과 물산(物産)의 풍부함이 여러 고을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그 풍속은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쓰는 것을 절약하여 재물을 저축하고 물화(物貨)를 늘이니 홍수와 가뭄이 재해가 되지 못하니, 실로 동쪽 지방의 아름다운 고을이다. 거정(居正)이 젊었을 때에 치악(雉岳) · 법천(法泉) 등 여러 산사(山寺)에서 글 읽느라고 원주를 왕래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매번 보면 중류 이상의 집들이 힘써 집을 영조(營造)하여 마루와 넓은 집과 높은 누(樓)와 아름다운 정자가 간 곳마다 수두룩하였다. 그런데, 홀로 어찌하여 이와 같이 크고 부유한 고을로서 관아(官衙)의 건물은 누추하고 좁아서 초라함이 이와 같은가. 그것을 창건한 연대를 물으니, 원(元)나라 연우년간(延祐年間)에 지은 것이라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계산하면 백 수십년(百數十年)이 된다. 그 동안 주의 수령된 자들이 이럭저럭[因循] 지나기를 좋아하여 수리하는데 힘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니, 이것이 주(州)의 큰 결점이었다. 성화(成化) 경자년에 철성(鐵城) 이후(李侯)가 뽑히어 이 주의 목사로 왔다. 정사는 잘 다스려지고 폐단은 없어졌다. 통판(通判) 전성(全城) 이후(李侯)와 모의하고 다시 중수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을 조정에 보고하여 허가를 얻었다. 재목을 모으고 기와를 구워 장차 경영을 시작하려 하니, 감사 권윤(權綸) 공도 또한 그 비용을 도와주었으나 때마침 시절이 좋지 못하여 착수하지 못하였는데 계묘년 봄에 좀 풍년이 들었으므로 일찍 공사를 일으켰다. 놀고 있는 자들을 고용하여 농민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았다. 곧 옛터에다가 그 제도를 더하고 넓혀서 먼저 대청 3간을 세우니 앞뒤에 날개를 붙였고 동헌(東軒)도 또한 같게 하였다. 크고 트이고 넓고 시원하매 높고 빛난다. 옛날의 좁던 곳이 지금은 너그럽고, 옛날의 누추하던 것이 지금은 시원하여서 보는 자가 모두 아름답게 여겼다. 이 해 여름 6월에 철성이 광주목사(廣州牧使)로 전근하고 상락(上洛) 김후(金侯)가 대신 부임하였으며, 이통판(李通判)이 임기가 차서 소환되고 허통판(許通判)이 후임으로 왔다. 공사를 마치지 못한 것은 양후(兩侯)가 더 잘 처리하였다. 어느날에 철성(鐵城)이 나에게 기(記)를 쓰게 하였다. 내 들으니, 세상의 논평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말하기를, '관아(官衙) 건물이 수리되고 안된 것은 수령의 어질고 어질지 않은 데에 달린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지 않다. 상고(上古)시대에는 궁실(宮室)이 없었는데 성인(聖人)이 대장괘(大壯卦)[2]에서 생각하여 처음으로 궁실을 경영하였으니, 더군다나 객관(客館)은 빈객(賓客)을 접대하며 관부(官府)를 위엄있게 하는 것이니 어찌 마음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의 수령들을 보니, 그 중에 세상 사정에 어두운 사람과 작은 일에 자질구레한 사람들은 비록 공문서의 처리에도 땀을 흘리면서 소매에 손을 넣은채 가(可)타부(否)타 하지도 못하니 다시 그 밖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간혹 현능(賢能)하다는 이름이 있는 자는 시세를 곁눈질해 보면서 가만히 명성(名聲)만을 도둑질 한다. 관서(官署)를 왜 수리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곧 핑계하여 말하기를, '나라의 금령(禁令)을 위반할 수 없으며, 백성의 힘을 고갈(枯渴)되게 할 수 없다.' 한다. 비록 겉으로 염정(恬靜)함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실로 이럭저럭 세월만 허송하고 있는 것이다. 맹가(孟軻)씨는 말하기를,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백성을 사역(使役)한다면 백성들은 비록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진실로 도(道)에 합치한다면 무엇이 법에 두렵고 백성들에게 두려워할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들의 하는 말이 이와 같으니 백성의 장관(長官)된 책임이 어떻다 하겠는가. 이제 이목사와 이통판이 다 자애롭고 착한 덕으로써 백성을 어루만지는 직책을 다하여 온 고을이 인정하였으니 그 남은 은덕은 황폐하고 떨어진 것을 수리하고 거행하기에 넉넉하다. 또 김목사와 허통판이 또 능히 앞사람의 정사를 계승하여 확대하고 아름답게 꾸몄으니, 관부(官府)가 온통 새로워져서 보는 것을 고치고 듣는 것을 바꾸어 놓았다. 거정(居正)이 전일에 이 주(州)의 흠으로 생각하던 것은 어찌 네 분 군자(君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네 분 군자의 재능과 덕(德)과 정사의 어짐이 전일의 수령들보다 멀리 뛰어남을 알 수 있다. 아, 성인(聖人)이 춘추(春秋)에서 토목사업을 일으킨 것을 반드시 기재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백성의 일을 중(重)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이다. 때는 흉년인데 공사가 과대하여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여러 사람을 동원한 것은 곧 깎아서 말하고, 재물을 손상시키지도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은 것은 곧 포창(褒彰)해서 칭찬하였다. 이제 네 분의 일은 《춘추》의 예(例)에서 본다면 마땅히 크게 쓰고 특별히 써서 찬미해야 하겠다. 거정은 벼슬이 사국(史局)의 장(長)의 자리를 더럽히고 있으면서 한마디 없을 수 있겠는가. 철성(鐵城)의 휘는 지(墀)요, 자는 승경(升卿)이다. 이통판의 휘는 녹숭(祿崇)이요, 상락(上洛)의 휘는 적(磧)이며, 허통판의 휘는 달(達)이니, 다 한 때의 명현(名賢)들이다." 하였다.

【누정】

봉명루(奉命樓) · 빙허루(憑虛樓) : 모두 객관의 동쪽에 있다.

【신증】

강회백(姜淮伯)의 시에, "높은 누에 홀로 올라 이번 걸음 유쾌한데, 소나무 산 헌함에 가득히 그늘 지우네. 인정은 엎치락 뒤치락 구름이 산으로 들어감 같고, 옛 뜻은 처량한데 눈[雪]이 성을 눌렀네. 강개(慷慨)한 마음 하루아침에 계책(計策)을 결정터니, 존망이 백년을 넘었건만 이름 아직도 남았네. 농사짓고 누에 치고 간 곳마다 백성 생업(生業) 안정한데, 포곡새[布榖鳥]는 무슨 일로 밭갈기를 재촉하는 고야." 하였다. 〇

Sn

  1. 서울에서 큰 길로 각 도에 이르는 첫 고을을 말하며 관(官)은 고을이라는 뜻이다.
  2. 대장(大壯)은 주역(周易)의 64괘(卦) 중의 한 괘의 이름이니, 크고 웅장하다는 뜻이다. 《주역》 계사하전(繫辭下傳)에, "상고시대에 사람은 바위 틈이나 들에서 살았는데, 후세에 성인(聖人)이 훌륭한 궁실(宮室)을 지어 생활 방식을 바꾸게 되니, 위에는 마룻대를 세우고 아래는 처마 기슭이 있어서 바람과 비에 대비하였다. 이것은 대체로 대장괘(大壯卦)에서 착상해온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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