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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봉」 (綿棒) 은 1953년 9월에 발표된 김수영의 산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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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초부터 부산에 있던 대부분의 미군기관 야전병원에는 서울서 피난하여 내려온 소위 대가 중견급 코리언 닥터가 적지않이 벼락감투가 아닌 벼락취직을 하고 있었다. 아니 벼락취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굴욕취직 같은 감을 그들은 어찌 할 수 없이 받고 있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이들 코리언 닥터들은 거의 전부 30세 이상의 기성 의사였으며 그 중에는 ○○대학 세균학연구소 소속 내과 박사 같은 어마어마한 독일 의학 계통의 명함을 가진 실력 있는 분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사정으로 보면 필연적으로 전란 중의 병원이라 내과 환자보다는 외과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이 나라 병원사상에 찬연히 기억될만한 막대한 숫자에 오르는 부상병과 피난민 환자들을 수용하지 않으면 아니 되어 미국 적십자사도 있는 힘을 다하여 인도주의의 극치를 발휘하고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내과를 전공하던 코리언 닥터도 할 수 없이 외과 환자를 취급하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되었으며 그들이 남모르는 비애를 맛보았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외과를 전공한 의사라 하여도 그들은 모두 독일식 의학을 배워왔으며 미국의 모던 서저리와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독일어는 알아도 영어는 모르는 의사가 있어 그들은 미국인 의사와 독일어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만성 오스티오 염증 환자의 고름이 나오는 구멍에다 미국인 의사는 심지를 꽂아서는 아니 된다고 주장하는데 코리언 닥터들은 마이동풍으로 꼬박꼬박 심지를 넣어준다. 그들이 배워온 의학상으로는 농(膿)을 흡수시키기 위하여 면봉(綿棒)을 넣어두어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아메리칸 모던 서저리는 면봉을 넣어두면 새살이 나오는 것에 장해가 된다고 하여 대경실색을 한다. 문화가 얕은 민족의 특징인지 무엇인지 모르지만 우리 겨레는 원래 고집이 세다. 도무지 미국인 의자의 말 같은 것은 듣지 않는다. 나중에는 그렇게 면봉을 넣지 말라고 역설을 하여도 들어먹지 않으니까 일일이 책임 추궁을 하기 시작하고 만일 금후부터 면봉을 넣어주는 의사나 간호원은 본 병원으로부터 일제히 해고하겠다고까지 나오게 되었다.
그 결과 간호원이 한 사람 희생을 당하였던가 하였다. 면봉이 해고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고 평상시의 품행이 깨끗한 것이 아니었다는 편이 오히려 많았지만 직접적인 동기는 이 면봉이었다. 미국인들은 자기의 직책에 대하여는 엄격한 나머지 왕왕히 신경질적인 데가 어느 국민보다도 많이 있다. 특히 의사라는 직업이 신경질의 대표 같은 것이고 거기다 의사 겸 군인이 되고 보면 그들의 신경이 바늘 끝같이 빛나게 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런데 차후 문제는 환자 편의 불평이다. 면봉을 넣어두는 데 습관이 된 환자들이 별안간 요법을 변경하고 보니 도리어 의사에게 면봉을 넣어달라고 졸라댄다. 보통 건강한 사람 상대와 달라서 환자의 고집이란 다루기에 거북하고 애석하여 곤란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말하기 싫은 의사들이 환자의 고집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환자의 요구대로 들어준다. 이러한 트러블이 상당히 오랜 기일을 두고 계속되다가 급기야 미군군의들은 통역을 시켜서 문제의 면봉 감시원의 역할을 반전문적으로 맡아보게 하였던 것이다.
또 하나 예를 들면 소크라는 온수찜질 요법이다. 미국 의학계같이 고도화된 기계 장비가 유족하고 철저하게 침투되고, 정밀 X광선 같은 것도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쓰는 가운데에 이 소크요법이라는 것은 아마 단 하나밖에 없는 소박하고 원시적이고 경제적인 요법 같다. 따뜻한 물에다 소금을 타서 외상이 아물어가는 곳에, 그것이 발이든 팔이든 복부이든 요부(腰部)이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될 수 있는 대로 오랫동안 침수시켜 놓는 것이다. 배농(排膿)이 빨리 되고 새살을 급속도로 나오게 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그런데 이것 역시 독일 의학에는 없는 것인지 코리언 닥터들은 얼굴을 찡그리고 이 요법의 지시에 응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환자는 환자대로 일기가 심하게 추운 날 같은 때는 막무가내로 하지를 않았다. 그것도 발이나 손 같은 곳에 환부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도 않았지만 궁둥이나 어깨 같은 불편한 곳에 부상을 당한 환자들은 거추장스럽기 한량없는 요법이었다. 나중에는 환자들도 차차 약아져서 미군군의가 왕진이나 검진을 올 때만 상처에다 살짝 물을 발라놓곤 하여서 면봉의 문제처럼 그렇게 시끄러운 말썽은 일으키지 않았다.
1952년에 들어서자 전선(前線)에서 오는 신(新)환자도 적어지고 오래 입원하고 있던 외과 환자들 중에서 내과로 가는 환자도 차차 수가 많아지게 됨에 따라서 여태껏 외과에 일을 보고 있던 본의 아닌 내과 전공의 코리언 닥터들도 자기의 본가인 내과로 이근 배치를 당하니 적지않이 어깨에서 숨을 덜었다.
통계적으로 보지 않고서는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국부적 현상으로 미루어볼진대 우리나라에는 도대체 외과 의사보다는 내과 의사가 훨씬 수적으로 많은 것 같다. 운동계에 있어서도 역도, 마라톤, 권투, 축구 같은 것이 다른 부문의 선수보다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여자 의사에 있어서는 외과 전공은 극히 소수인 것 같은데 이 여자 의사의 경우는 특수한 것이 있겠지만, 남자 의사에 관하여서는 내과 의사가 종래에 많이 배출되었다는 것은 이 나라의 정치와 더불어 민족성에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1952년 말까지 미군기관에 있던 소위 독일식 훈련을 받은 권위 있고 고집이 강한 코리언 닥터들은 점차 보이지 않게 되었다. 풍문에 들으면 개업을 한 사람도 있고 방직회사에 취직한 사람도 있고 연구실로 다시 돌아갔다는 사람도 있으며 국군병원에 군의가 된 사람도 있다 한다. 그들은 이제 면봉을 가지고 싸우지 않아도 좋을 것이니까 그것만 해도 그들은 행복하게 된 셈이다.
1953년에 들어서선 미군계통 병원은 거의 의과대학을 새로 나온 전후파 의학사들로 대치되었다. 종래와 같은 모던 서저리와의 충돌은 없어졌으나 이들에게는 불쌍하게도 권위가 없다. 환자가 오히려 신진 의사보다 조예가 깊은 경우가 생기거나, 젊은 의사보다는 숙련된 간호원에게 신뢰를 두는 것이다. 젊은 의사는 일에 재미가 없어져서 그러는지 더 좋은 자리를 찾아가느라고 그러는지 항시 변동이 끊일 사이가 없었다. 불쌍한 것은 환자뿐이다. 환자는 한 사람의 의사가 오랫동안 맡아놓고 보아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환자는 우리나라의 민중이라고 할 것 같으면 의사는 우리나라의 문화정책이다. <민족정기로써 사대주의를 박멸하자>라는 삐라가 거리의 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지난날의 전설 같은 면봉이 불현듯 생각이 난다. 나도 알지 못하는 이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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