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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ynman2.png 파인만과 관련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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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야 뭐라 하건 무슨 상관입니까? (What do you care what other people think?)”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그는 반은 천재고 반은 광대인 괴상한 사람이다.”

물리학자 프리먼 존 다이슨, 파인만에 대해 처음으로 평가하며

“그는 완전한 천재, 완전한 광대이다.”

프리먼 존 다이슨, 파인만에 대해 다시 평가하며

“세상에는 두 종류의 천재가 있다: '평범한' 천재들과 '마술사'들. 평범한 천재란 당신이나 나와 같은 사람들인데 다만 수십 배 더 똑똑할 뿐이다. 그들의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은 신비롭지 않다. 그들이 한 일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 역시도 그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마술사들은 다르다. 그들이 한 일을 이해하고 난 후에도 칠흑 같은 어둠만 남아있을 뿐이다. 리처드 파인만은 최고 수준의 마술사다.”

수학자 마크 캑, 파인만에 대해 평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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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jpg


Richard Phillips Feynman
1918.5.11. - 1988.2.15.

개요

파인만은 어떤 사람인가요?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Richard Phillips Feynman) 은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입니다. 파인만은 양자 전기역학 (QED) 의 재규격화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줄리언 시모어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와 함께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물리학계에서 유명한 학자가 되었습니다.

연구 업적 이외에도 파인만은 권위에 저항하는 모습과 유쾌한 성격으로 인해 여러 일화들을 남겼기에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과학과 물리학에 대한 그만의 독창적인 접근 방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많은 물리학도들과 과학 교육자들이 그의 책과 강연들을 보면서 도움을 받기도 하고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파인만은 '물리학계의 아이돌'이나 '전설적인 물리학 전도사'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인만의 업적

파인만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실제로도 굉장히 재미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그의 개인적인 측면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물리학에 있어서 파인만이 남긴 엄청난 업적들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물리학에서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은 그의 일대기에 비해 대중적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가 양자 전기역학을 연구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양자계는 고전 이론에서 금지된 경로를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경로를 동시에 통과한다'라는 정말로 기괴한 발상을 통해 여러 문제들을 해결한 것만 봐도 그의 참신한 발상들 역시 그의 개인적인 부분만큼이나 주목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물리학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보았을 때에도) 정말 흥미로운 것입니다. 또한 그가 완성한 경로 적분이라는 계산법은 정말 엄청난 업적이었으며 그처럼 간단하고 명료하게 물리학을 기술할 생각을 하는 사람이 지금도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생애

어린 시절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은 1918년 5월 11일미국 뉴욕 시 퀸즈의 파 락어웨이 (Far Rockaway) 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이었지만 유대교의 의식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멜빌 아서 파인만 (Melville Arthur Feynman) 은 어떤 것에 대한 답보다 그것에 대한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는 교육을 통해 그의 독창적인 사고에 영향을 주었고, 어머니 루실 파인만 (Lucille Feynman) 은 그의 유머와 재치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파인만은 어린 시절에 큰 포장용 나무 상자를 이용해서 자신의 방 안에 실험실을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서 전기 회로를 만들면서 놀기도 했고, 증폭기나 도난 경보기를 직접 만들어서 가지고 놀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라디오를 가지고 놀다가 라디오 수리공으로 일하기도 했고, 숙모가 경영하는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MIT) 에 입학하여 물리학을 전공하게 되었고, 4년 후인 1939년에 학부를 졸업했습니다. 학부 3학년 당시에 파인만은 이미 학부 수준을 뛰어넘은 상태였기에 조기 졸업을 할 수 있었으나 결국 무산되어 4년을 다 채우고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학부 졸업 논문은 헬만-파인만 정리를 증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학부 졸업 후에 그는 MIT에 계속 남아있기를 원했으나 다른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프린스턴 대학으로 옮겨서 대학원 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파인만은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43년 초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주도하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권위적인 것에 대해 무감각하였기 때문에 여러 권위 있는 학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할 때에 나온 의견 중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거의 면박에 가깝게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끊임없이 그 문제에 대해 지적을 했고, 그 때문에 '모기' (Mosquito) 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엄청난 기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파인만의 이러한 탈권위적 성격 덕분이었습니다.

강의와 노벨상

1962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학부에서 진행되는 일반물리학 강의를 보강할 필요가 있게 되자 파인만은 기초 물리학 강의를 맡기로 했습니다. 그의 강의는 1961년 9월부터 1963년 5월까지 학부생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으며, 그의 독창적인 접근법을 바탕으로 고전 역학에서부터 양자 역학까지 다루었습니다. 이후 그의 강의록은 1964년에 『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파인만 물리학 강의) 라는 제목의 세 권 짜리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아직까지도 전설적인 책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수많은 물리학도와 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강의록은 표지가 빨간 색이기 때문에 흔히 '파인만의 빨간 책'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며, 물리학의 고전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1965년, 파인만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양자 전기역학 (QED) 의 재규격화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줄리언 시모어 슈윙거도모나가 신이치로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세 사람은 모두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경로 적분을 사용한 파인만의 접근 방식이 가장 독특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챌린저 우주 왕복선 폭발 사고 조사

1986년 1월 28일, 미국챌린저 우주 왕복선이 발사 73초 후에 폭발하여 7명의 우주비행사들이 사망했습니다. 이 사고는 미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주었으며 사고 이후 즉시 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 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후 며칠 뒤에 미국 항공우주국 (NASA) 의 책임자 윌리엄 그레이엄 박사가 파인만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 위원회의 위원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파인만은 그 자리를 맡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으나 주변 사람들과 아내의 설득으로 결국 위원 직을 맡기로 했습니다. 사고 조사 위원회는 대통령 특별 위원회였으며, 위원장은 이전에 국무 장관을 맡았던 윌리엄 로저스였습니다. 이후 파인만은 조사 위원 자격으로 NASA 제트 추진 연구소의 기술자들과 만나 우주 왕복선의 여러 부품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런데 파인만은 자료 조사를 하던 도중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NASA의 고체 연료 추진 로켓의 접합부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는데, NASA의 비행 준비 상황 보고서의 요약본 앞부분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 현장 조립부의 2차 밀봉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므로 심각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접합부 회전 현상을 감소시키는 방법이 강구되어야 한다.

접합부 회전 현상은 고체 연료 추진 로켓의 내부 압력이 증가하면서 로켓의 벽면이 밖으로 밀리게 되지만 로켓 부품의 연결 부분은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서 봉합한 부분이 벌어지게 되어 뜨거운 가스가 밖으로 새어나오게 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로켓의 접합부는 'O링'이라고 부르는 두 개의 고무 고리와 핀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O링의 두께는 6mm 정도이며 지름은 3.6m, 전체 길이는 11m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NASA의 비행 준비 상황 보고서 요약본의 끝부분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 현 제반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모든 접합부가 200psig의 안정화 압력으로 밀봉이 확인되고, 밀봉 부위가 오염되지 않고, O링의 신축성 조건이 만족되는 경우에는 현재의 설계대로 계속 비행해도 안전하다.

파인만은 이 문제가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하면서도 어떻게 '계속 비행해도 안전하다'는 분석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NASA의 관계자에게 따졌고, 그는 그 보고서를 상세하게 본 결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라고 확인해주었습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설계상으로는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내부의 기체가 밖으로 새면 안되지만 접합부의 밀봉에 있어 약간의 결함이 있더라도 별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정말 위험한 것이라고 파인만은 생각했습니다.

이후 파인만은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에 가서 NASA 홍보 영화를 보고 나서 챌린저 우주 왕복선 폭발 사고가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날 오후에는 조사 위원회의 위원인 커티나 장군이 파인만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위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갑자기 자신이 자동차의 카뷰레이터를 손보고 있던 중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파인만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아이디어는 바로 챌린저 우주 왕복선이 비행하던 날의 기온이 화씨 28 ~ 29도 (섭씨로는 영하 2도 정도) 정도의 매우 추운 날씨였는데 이렇게 낮은 온도가 O링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파인만은 커티나 장군과 함께 그레이엄의 사무실로 가서 온도가 O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그레이엄은 자신이 자료를 가지고 있지는 않으나 가능한 한 빨리 가져다주겠다고 답한 뒤 파인만에게 흥미로운 사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폭발이 일어나기 몇 초 전의 모습을 찍은 것인데, 오른쪽 로켓에서 불길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파인만은 우연히 그레이엄의 사무실에 우주 왕복선 모형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모형을 사무실 바닥에 놓고 걸어다니면서 사진에서 보이는 우주 왕복선의 각도와 같은 지점을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파인만은 로켓에 있는 밀봉 검사구 근처에서 불길이 새어나오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밀봉 검사구는 두 개의 O링 사이에 있으며, 이곳을 통해 압력을 가해서 접합과 밀봉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는 구멍입니다. 이 구멍이 제대로 막히지 않았거나 첫 번째 O링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이곳을 통해 내부의 기체가 새어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얼마 후에 파인만은 챌린저 우주 왕복선의 로켓이 점화된 직후에 찍은 사진에서도 이미 조립부에서 연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확인했고, 관련 기술자는 발사 전날 밤에 기온이 섭씨 12도 이하로 내려가면 우주 왕복선을 발사해서는 안된다고 NASA에 통보했었음을 밝혔습니다. 우주 왕복선 발사 당일의 아침 기온은 섭씨 영하 2도였기 때문에 이것은 명백한 실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NASA에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반박했으며, 이전에 섭씨 12도 이상의 기온에서 발사했을 때에도 동일한 문제들이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참사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레이엄이 O링에 대한 자료들을 파인만에게 가져다주었는데, 파인만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인지 O링을 만드는 고무 재질을 두 시간 동안 어떤 온도와 압력 하에 놓았을 때 다시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오는 시간에 대한 자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레이엄에게서 자료를 받은 다음 날이 언론에 노출되는 공개 회의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파인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자료를 받았기에 이것을 사용할 수가 없었고, 그는 추운 날씨에서 O링에 생기는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방법을 따로 생각해야 했습니다. 파인만은 O링 고무 샘플을 얻어 직접 실험을 통해 자신의 예측을 증명한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이를 위해 그레이엄에게 샘플을 요청했으나 그레이엄은 그 샘플이 케네디 우주 센터에 있기 때문에 구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음 날에 있을 공개 회의에서 사용하게 될 조립부 모형에 똑같은 고무 샘플이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파인만에게 그 고무를 빼낼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파인만은 호텔을 떠나 택시를 잡아타고 철물점으로 가달라고 말했습니다. 철물점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8시 15분이었는데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이 8시 30분이었기에 파인만은 가게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이후 가게가 문을 열자 파인만은 스크류 드라이버 두 개와 펜치 여러 개, C자형 클램프 중 제일 작은 것을 하나 사서 NASA로 돌아갔습니다. NASA에 있는 그레이엄의 사무실로 가던 중에 파인만은 자신이 산 C자형 클램프가 너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NASA 구내 보건소로 가서 의료용 튜브를 고정할 때 쓰는 클램프가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하필이면 의료용 클램프가 하나도 없었고, 보건소 직원은 유리컵에 파인만이 사온 클램프를 넣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다행히도 클램프는 유리컵에 들어갈 정도로 작았으며 파인만은 안심하고 그레이엄의 사무실로 올라갔습니다. 그레이엄의 사무실에서 파인만은 펜치를 이용해서 조립부 모형의 O링을 쉽게 뽑을 수 있었습니다. 공개회의 중에 실험을 진행해야 극적이겠지만 걱정이 되었기에 그레이엄의 사무실에서 우선 실험을 했고, 그 결과는 파인만이 예상했던 것과 일치했습니다. 파인만은 확인 후에 고무를 모형에 다시 끼운 뒤 그레이엄에게 돌려주었습니다.

파인만은 한쪽 주머니에는 펜치를 넣고 다른쪽 주머니에는 C자형 클램프를 넣고 공개 회의가 진행되는 회의실로 향했습니다. 커티나 장군의 옆에 앉은 다음에 실험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전의 회의 때 주던 식으로 발표자 전원에게 얼음물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직원에게 얼음물을 요청했는데, 5분이 넘어도 얼음물이 오지 않아서 당황했습니다. 회의는 계속 진행되어서 NASA 측의 책임자가 접합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파인만은 이후에 자신이 이야기할 것을 위해 미리 그에게 공개적으로 몇 가지 질문들을 던졌습니다. 우선 발사 중에 생기는 진동 때문에 로켓의 접합부가 조금 움직이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고, 로켓의 연결 부위가 헐거워질 때 접합부 안쪽에 있는 O링이 순간적으로 팽창해서 그 공간을 메워주는 기능을 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 질문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확인해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파인만은 O링이 눌렸을 때 1 ~ 2초 정도가 지나도 제 자리로 돌아오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냐고 물었으며 그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때까지도 얼음물은 오지 않았고, 파인만은 실험을 할 수가 없어 발언을 멈추었으며 다른 사람들이 계속 발언하게 되었습니다. 접합부 모형이 계속 돌고 돌아서 파인만의 자리에 오게 되자 파인만은 주머니에 있던 클램프와 펜치를 꺼낸 다음에 모형에 있는 O링을 뽑아냈습니다. 이때까지도 얼음물이 오지 않아서 파인만은 직원에게 얼음물을 재촉했으며, 직원은 손짓으로 곧 온다고 답했습니다. 다행히도 얼마 후에 젊은 여직원이 얼음물 컵이 잔뜩 담긴 쟁반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왔습니다. 이후 연단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 얼음물이 담긴 잔을 돌렸습니다. 파인만의 의도를 잘 몰랐기에 모든 사람에게 줄 얼음물을 준비하느라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에 얼음물이 도착하자 파인만은 준비한 C자형 클램프로 O링 고무를 꽉 조인 다음에 얼음물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O링 실험을 하는 파인만.jpg

파인만이 얼음물을 이용해 O링이 섭씨 0도에서 탄력성을 잃음을 보여주는 모습.

몇 분 후에 파인만은 마이크의 버튼을 누른 뒤 클램프를 얼음물에서 빼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모형 속에 있던 고무를 빼서 이 얼음물에 한동안 담가 놓았습니다."
클램프를 서서히 풀면서 파인만은 계속 말했습니다.
"저는 이 클램프를 풀어도 눌렸던 고무가 다시 제 모양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말해, 온도가 섭씨 0도일 때에 이 고무는 수초 이상 동안 탄력성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풀려고 하는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이후 파인만의 이 일화는 얼음물 한 잔으로 참사의 원인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실험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사망

1988년 2월 15일, 파인만은 오랜 투병 생활 중에 지병이었던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그는 죽기 며칠 전에 잠시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 여동생 조안에게 "나는 두 번은 못 죽겠어. 죽는다는 건 너무 지루하거든. (I'd hate to die twice. It's so boring.)' 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다시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사망했습니다. 그는 삶의 마지막까지 유쾌함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해

파인만은 과학 지상주의자인가?

파인만이 과학 지상주의자라는 비판이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이에 대한 반박으로는 파인만이 그 유명한 빨간 책에서 남겼던 말을 인용하면 그만입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분명하게 해둘 것이 있다. 사람들은 흔히 '과학적이 아닌' 것에 대하여 불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과학이 아니면서도 우리에게 좋은 것은 얼마든지 있다. 사랑이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무언가가 과학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과학이 아닌 '다른 무엇'일 뿐이다.”

리처드 필립스 파인만, 『The Feynman Lectures on Physics』 中

그가 이런 오해를 받게 된 이유는 그가 오직 과학에 대한 생각들만 중시했기 때문인데, 이는 '과학적인 생각만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과학적인 생각 이외의 것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가 과학적 사고를 중시하였던 것은 개인적인 특징일 뿐이며 '과학 이외의 다른 것들에는 가치가 없다'는 식의 주장을 한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과학 이외의 것들 역시 나름의 가치가 있으며 과학 역시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남겼습니다. 또한 과학 이외의 분야들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미술을 배우기도 하고 음악 연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파인만은 여성차별주의자인가?

파인만은 여러 차례 여성에 대해서 차별적인 발언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파인만이 20세기 초반에 살았기에 당시의 보수적이고 차별적인 사회적 관념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기에 생겼던 문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파인만은 그러한 차별적인 생각을 고정하지 않고 이후에 살아가면서 자신 주변의 많은 여성을 관찰하고 여학생들을 관찰하기도 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지능에는 차이가 없으며 여성도 충분히 수학이나 물리학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깨달음에 대해 '여성이 그런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놀라웠다' 정도의 문장으로 기술하다보니 여성을 깔보는 듯한 말로 보이기에 충분했던 것은 사실이며 분명 그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는 깔보고 있었던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파인만은 흔히 여성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일들을 거부하고 남성적인 일들을 좋아하고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으나, 사실 파인만이 말하는 여성적인 일은 문과이고 남성적인 일은 이과 쪽의 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여성 자체를 싫어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여성이 대개 그러한 취향 (문과) 일 것이며 남성은 그러지 않는다는 편견은 계속 가지고 있었으나 이후 파인만은 삶을 계속 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이러한 편견이 어리석은 것임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종합하자면 파인만은 당시 사회의 편견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그런 점에서는 분명히 여성차별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속적인 관찰과 생각을 통해서 자신의 편견을 그대로 편견이고 잘못된 생각임을 인정하였고 이후에는 여성을 폄하하거나 무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차별주의자에 머무르지 않고 평등함을 깨닫게 되었기에 '파인만이 여성차별주의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삶과 생각 변화의 전체 과정을 모르고 단정짓는 것입니다.

결국 파인만의 이 논란에 대해 요약하자면 '파인만은 분명 여성차별주의자였고 남성우월주의자였으나 과학적 사고와 합리-논리적 사고를 통해 자기 자신의 생각이 편견임을 알게 되었고 이후로는 절대 그런 편견을 가지지 않았다'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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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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